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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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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北漢山城 禁衛營 移建記碑)는 조선 숙종 41년(1715년)에 금위영을 이전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원래 금위영은 소동문(小東門) 안에 위치했으나, 지대가 높아 비바람에 무너지기 쉬워 보국사(輔國寺) 아래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 비석은 이러한 이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주요 내용:


  •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32번지 북한산성 내 대성암 근처
  • 지정: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87호 (1979년 9월 3일 지정)
  • 시대: 조선 숙종 41년 (1715년)
  • 크기: 총높이 1.41m, 비높이 1.05m, 너비 2.25m
  • 재질: 화강암
  • 형태: 와비(臥碑) 형식 (누워있는 형태)
  • 내용:
  • 1711년(숙종 37년)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북한산성을 나누어 개축하고 군영을 설치하여 유사시에 대비했다는 내용
  • 금위영은 능암 동남쪽에서 보현봉 아래까지 2,821보를 쌓았고, 1,065개의 성가퀴와 2개의 성문(대성문, 소동문)을 만들었다는 내용
  • 금위영 유영(留營)을 보국사 아래로 이전한 사실과 그 전말을 기록
  • 비문: 도제조 이이명(李頤命)이 지음

역사적 배경: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북한산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711년(숙종 37년)에 대대적인 개축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중앙 군영(삼군문)을 설치하여 수도 방어와 국왕 호위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금위영은 이 중 하나로, 북한산성의 수비를 분담했습니다.

2014년에는 북한산성 정밀지표조사 과정에서 금위영 유영지 맞은편 바위에 새겨진 '금위영(禁衛營)' 각자(刻字)가 발견되었습니다. 각자는 가로 41cm, 세로 50cm 크기로, 해서체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당시 금위영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
기본 정보
이름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
영문 이름Bukhanseong Geumwiyeong Igeon Gipi
지정 정보
국가대한민국
위치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32번지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87
지정일1979년 9월 3일
시대
시대조선 시대
추가 정보
관련 문화재북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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